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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주언약교회

고린도후서 2장

2019년 4월 25일

고린도후서 2장



*말씀읽기

1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

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4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5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9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10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말씀묵상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지 않기로 한 이유를 서술합니다. 그 이유는 성도들의 기쁨을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설명을 하는 이유는 4절에 있는 눈물로 쓴 편지 때문입니다. 아마도 심한 책망으로 편지를 쓴 것으로 보입니다(고린도전서가 아니라 그 이후에 쓴 또 하나의 편지로 봄). 그런데 이 편지로 인하여 고린도 교회가 큰 근심을 하게 되었지만 회개하며 좋은 결과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바울은 이러한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사랑으로 쓴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죄의 모습에 대해 책망하고 권징하는 것은 교회의 바른 모습이지만 이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회개하고 회중 앞에 선 자들에 대한 사랑으로 품는 것입니다. 징계나 책망은 반드시 사랑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교회가 깊이 돌아보며 반성해야 할 내용이 있는데 잘못한 자들에 대한 차별과 격리, 혹은 미움을 보이는 것입니다. 교회는 청정지역이 아닙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죄가 드러나는 곳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은 구속을 고백하게 됩니다.

이러한 고백이 있을 때 용서가 있게 됩니다. 자신 역시 용서를 받은 자, 죄악 가운데 태어나 살던 자임을 확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그 근심하게 한 자를 용서하고 위로하라고 권면합니다. 지금까지 받은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계속 될 경우 너무 많은 근심에 빠질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에게 속지 않기 위함이라고도 합니다. 즉 용서는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막아 주는 역할을 한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죄를 멀리 해야 합니다. 그러나 죄인을 격리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권면과 책망을 통하여 경계하지만 사랑과 용서를 통하여 교회가 평안과 은혜로 가득하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는 늘 그리스도 앞에서 존재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제 자신이 드로아에서 복음의 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디도를 만나기 위해 마게도냐로 간 이야기를 합니다. 디도를 만나지 못하여 마음이 불안한 가운데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는데 그곳에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7:5).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나게 하셨다고 합니다. 즉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상황을 뛰어넘어 이기게 하시고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도록 하셨다는 말입니다.

늘 그렇듯이 이 이김은 세상에서 볼 때 승리적 모습이 아니라 쫓기고 두려워하는 상황이라는 사실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은 승리는 세상을 호령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얻는 자와 망하는 자를 갈라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신자들에게 있어서 고난이나 어려움은 이처럼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는 상황임을 보여 줍니다.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으로 살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17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합니다. 즉 세상과 타협하고 복음을 희석시키도록 합니다. 그래서 적당한 삶의 모습으로 살도록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한다고 합니다. 오늘도 세상 속에서 흐려지지 않고 순전함으로 복음의 삶을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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