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31일
데살로니가 전서 5장
*말씀읽기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2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27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
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말씀묵상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마지막으로 종말에 대한 내용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4장 마지막에 주의 재림과 부활에 대한 언급을 했는데 이것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당시 가지고 있었던 믿음의 내용을 굳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곧 오실 것을 기대했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고난과 핍박 가운데 죽어가는 자들이 생기게 되자 소망이 없는 다른 이들과 같이 슬퍼하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4:13).
그래서 주의 재림의 때와 시기에 대한 의문이 생기게 되자 바울은 분명하게 종말적 신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게 된 것입니다. 한 마디로 깨어 있어 정신을 차리고 주와 함께 있음을 확인하고 서로 믿음을 세워 주라는 것입니다. 너무 단순하고 기본적인 이야기이지만 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종말적 신앙은 신자의 기본적인 자세이며 내용입니다.
종말적 신앙의 기초는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문제는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른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 말은 늘 준비된 상태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연습이 실전이며 실전이 연습과 같은 삶입니다. 즉 신자의 삶은 늘 빛의 아들이며 낮의 아들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측하고 계획하여 사는 삶이 아니라 낮에 속하여 늘 주님과 함께 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구에 대해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완벽한 삶을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거룩한, 실수가 없는, 누가 봐도 신자같은, 늘 온유하며 관용하는 모습을 해 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나에게 주어져 있는 상황과 상태를 분명하게 알라는 말입니다. 2절을 보면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걸 모르는 신자는 없습니다. 10절의 내용도 모르는 신자는 없습니다. 낮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쓴 자들입니다.
이 모습은 엡6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말합니다. 모두가 다 복음으로 무장된 모습입니다. 이 모습은 어느 날 전쟁에 나갈 때 준비하는 장군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와 장소와 상황에 상관없이 늘 그래야 하는 모습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에 대해서도 오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에 나가 전사처럼 싸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9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이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뭔가 해내라는 준비가 아니라 구원받은 자들이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사는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자들입니다(롬14:8). 전신갑주는 내가 주의 것임을 고백하는 내용들입니다. 어느 것 하나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 주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이 있는 자들이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일부러 애써 그렇게 생각하고 인정한다는 말이 아니라 모든 것이 주의 인도하심이기에 그런 자들로 만들어 가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놀라운 약속입니다.
23-24절은 살전의 요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거룩입니다. 재림하실 때 흠 없게 보전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고 계십니까?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걷어차고 계시는 것은 아닙니까? 순종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늘 주의 역사와 일하심만이 드러나는 삶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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