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6일
히브리서 7장
[말씀읽기]
멜기세덱
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여러 왕을 무찌르고 돌아올 때에, 그를 만나서 축복해 주었습니다.
2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첫째로, 멜기세덱이란 이름은 정의의 왕이라는 뜻이요, 다음으로, 그는 또한 살렘 왕인데, 그것은 평화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3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아서, 언제까지나 제사장으로 계신 분입니다.
4 그가 얼마나 위대하신가를 생각하여 보십시오. 족장인 아브라함까지도 가장 좋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바쳤습니다.
5 레위 자손 가운데서 제사장 직분을 맡은 사람들은, 자기네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비록 그 백성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율법을 따라 열의 하나를 받으라는 명이 내려 있습니다.
6 그러나 멜기세덱은 그들의 족보에 들지도 않았는데, 아브라함에게서 열의 하나를 받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그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7 두말 할 것 없이 축복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서 받는 법입니다.
8 한쪽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십분의 일을 받고, 다른쪽에서는, 살아 계심이 입증되신 분이 그것을 받습니다.
9 그렇게 말하면,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까지도 아브라함을 시켜서, 십분의 일을 바친 셈이 됩니다.
10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에는, 레위는 아직 그의 조상 아브라함의 4)몸 속에 있었으니 말입니다.
11 그런데 이 레위 계통의 제사직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으로 지령을 받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제사직으로 완전한 것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면, 아론의 서열이 아닌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다른 제사장이 생겨날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12 제사 직분이 변하면, 율법에도 반드시 변화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13 이런 말이 가리키는 그는 다른 지파에 속한 분입니다. 그 지파에 속한 사람으로서는, 아무도 제단에 종사한 적이 없습니다.
14 우리 주님께서는 유다 지파에서 나신 것이 명백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 지파와 관련해서는, 제사장들에 관해 아무것도 말한 바가 없습니다.
15 멜기세덱과 같은 모양으로 다른 제사장이 생기면, 이 사실은 더욱더 명백합니다.
16 그는 제사장의 신분을 규정한 율법을 따라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니라, 썩지 않는 생명의 힘을 따라 되셨습니다.
17 그를 두고서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서 영원히 제사장이다" 한 증언이 있습니다.
18 전에 있던 계명은 무력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게 되었습니다.
19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힘입어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20 그리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레위 계통의 사람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21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맹세로 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주께서 맹세하셨으니, 주께서는 뉘우치지 않으실 것이다. 너는 영원히 제사장이다" 하셨습니다.
22 이렇게 해서, 예수께서는 더 좋은 언약을 보증하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23 또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음 때문에, 그 직무를 계속할 수 없어서, 그 수가 많아졌습니다.
24 그러나 예수께서는 영원히 계시는 분이시므로, 제사장직을 영구히 간직하십니다.
25 따라서 그는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늘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의 간구를 하십니다.
26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제사장으로 계시기에 적격이십니다. 그는 거룩하시고, 순박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구별되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입니다.
27 그는 다른 대제사장들과는 다릅니다. 다른 제사장들은 날마다, 먼저 자기 죄를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을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리지만 그는 이렇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자기를 바치셔서, 단 한 번에 결정적으로 이 일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28 모세의 율법은 사람들을, 약점이 있어도, 대제사장으로 세우지만, 율법이 생긴 다음에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들을 대제사장으로 세웁니다.
[말씀묵상]
7장에서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에 대한 설명을 하던 중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멜기세덱이 누구인지, 레위지파가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오셔야 하는 이유를 밝힙니다. 1-3절은 창세기에 나온 멜기세덱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닮은 존재임을 설명합니다. 살렘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멜기세덱이라는 말은 의의 왕이라는 의미이고 살렘왕이라는 말은 평화의 왕이라는 의미입니다. 부모나 족보가 없고 시작도 생명의 끝도 없다는 말은 그가 신적인 존재임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런 제사장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 주었고 아브라함은 십일조를 그에게 준 것입니다. 이 사실이 어떤 의미인지를 4-10절까지 설명합니다. 먼저 레위 족보를 따라 제사장을 맡은 자들은 율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십일조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레위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침으로 멜기세덱이 레위의 제사장직보다 훨신 더 우월한 제사장임을 보여 준다는 말입니다. 9-10절이 이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다는 말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의 드림 속에 레위의 드림도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 줌으로도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높은 자임을 말하는 것입니다(7절). 아브라함보다 높은 자라는 말은 레위보다도 높은 자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8절에 더 중요한 대조를 보여 줍니다. 레위가 받은 십일조는 죽을 자들이 받은 것이지만 멜기세덱이 받은 십일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레위는 율법에 따라 드려진 십일조를 받은 것이고 멜기세덱은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드린 십일조를 받은 것입니다. 전자는 행위로 드린 것이고 후자는 은혜와 감사로 드린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대조는 단순히 멜기세덱이 우월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의 제사장직이 예표하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레위의 제사장직이 완성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에 레위 계통의 제사가 온전하지 않아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세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16절에 육신에 속한 법을 따른 것이 아닌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된 것이라고 합니다. 19절이 이로 인해 더 좋은 소망이 생겼고 이것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을 통하여 신자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신자의 모든 삶은 주님의 은혜와 주권에 의해 인도함을 받고 있으며 그 끝과 결과가 영원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하게 성취되고 완성된다는 믿음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22절에 나오듯이 예수님께서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언약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25절에 영원한 제사장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에게 나아가는 자를 온전히 구원하시며 항상 살아 계셔서 그에게 나아가는 자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끝까지 갈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이것입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 내 삶을 이끌고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제사장인 예수님께서 간구하셔서 온전히 구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에서 죄를 담당하시고 대속하신 것으로 끝이 아니라 여전히 중보하시는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약의 편지들이 항상 권고하는 내용이지만 편지를 읽고 있는 자들의 상황, 핍박과 고난, 배교의 위험 속에서 인내하며 감당하고 이겨내라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에 근거한 것입니다. 신자들이 서로 중보하며 위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히브리서를 읽는 독자들은 다시 유대교로 돌아오라는 회유가 가장 컸습니다. 이웃과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맹세로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되심은 그들이 의지할 유일한 근거였던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서 중보자이신 주님을 의지하며 승리의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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